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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소아성애자다.
2차 성징이 발현되지 않은, 성적 욕망이 계발되지 않은 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로리타 콤플렉스'란 말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지. 그래서 소설 '로리타'도 읽지 않았다. 근데 어제 서점엘 갔더니 빈티지 출판사에서 로리타를 재발간했더라. 아주 성적인 표지로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원서 표지를 모아봤다. ![]() 이 아이는 영화를 책으로 발간한 것. 영화의 포스터를 차용했다. ![]() 얘는 스페인 판. 정열의 나라에서 온 아이라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에로틱하다. ![]() 랜덤하우스에서 발간한 것인데 무난하다. 어차피 소설의 주인공은 교수였으니까 그를 모델로 한 것인 듯. 그래도 제레미 아이언스의 목소리는 좋아. 흐흑. ![]() 이 녀석이 문제의 출판사 빈티지 출판사에서 발간한 것. 어린 여자아이의 발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왠지 모르게 에로틱하다면 나 쫌 변태인거야? ![]() 제레미 아이언스까지 있구나. 나의 로망, 제레미 아이언스. 고딩때 이미 이상형이 조지 클루니와 제레미 아이언스였다니. 난 너무 늙은거다-_-;; 요즘은 숀 코네리도 추가요. 나도 나이를 먹은 게지. ![]() 이건 문고판. 요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어떤 책의 모델이 될 지 알고나 시킨건지 사뭇 궁금해진다. ![]() 이번에 한정 발간된 롤리타. 표지 디자인만은 수준급이라고 말하고 싶다. 말할 듯, 말하지 않을 듯한 살구빛 입술. 솔직히 나도 한 권 살까 무지 고민했었다. 비판을 하더라고 제대로 읽어봐야 할터이니 원서를 구입해서 읽어보아야겠다.
예전에 육남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가난했던 시절, 홀어머니가 떡을 팔며 여섯 남매를 힘겹게 키워가는 그런 이야기였드랬다. 그러다보니 첫째는 늘 열심히 공부해야했고 동생들을 챙겨야했다. 아버지 같은 큰형은 늘 열심히 공부했고, 어머니 같은 큰누나는 엄마 대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동생들을 키웠다. 물론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선생님은 이 아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아끼고 사랑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80년대의 학교는 그 드라마와는 너무 달랐다. 난 촌지를 주지 않은 엄마 덕에 담임에게 뺨을 맞아 귀가 찢어진 아이였고 우리반의 어떤 아이는 촌지를 준 엄마덕에 늘 우리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는 아이였다. 고등학교땐 우열반 때문에 영어와 수학 시간에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0교시 덕에 집이 멀었던 난 5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야만했다. 버스에선 늘 졸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늘 피곤했다. 학교 문 앞에선 선생님들이 늘 우리들의 복장을 검사했다. 치마길이, 머리길이, 구두굽 높이. 내 친구는 머리를 반만 잘려서 울었고 또 다른 친구는 단발이 아닌 머리 때문에 화장실 벽에 붙은 코딱지와 오물을 닦아내야했다. 운동화를 한 짝만 뺏겨 3000원짜리 런닝화를 신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고 중학교때는 80점 이하가 모두 맞기로 해서 79점이라는 억울한 점수로 엉덩이를 수십대 맞았다. 발바닥을 때리던 영어 선생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한 적도 있고, 답안지를 밀려써서 10점을 받았지만 항의조차 못해봤다. 분명히 고쳐 쓸 시간이 있었지만 시험 감독으로 들어온 체육 여자 교사는 내 답안지를 그냥 빼앗아가 버렸다. 그 다음이 자신의 점심 시간이었으므로. 그렇지만 난 그래도 언니 오빠가 세상 많이 좋아졌네~라고 했던 아이였다. 언니오빠 때는 공부만 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아무나 대학에 갈 수 없었다. 대학이라는 곳만 나오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만 나온 내 언니는 자신의 생활에 불만은 없었지만 대학에 간 친구를 부러워했다. 고생고생해서 졸업하면 뭔가 달라져 있을 거라고. 이때도 우리 엄마와 이모와 외삼촌은 예전보다 낫다라고 했다. 우리 외삼촌,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형제 넷의 뒷바라지 속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했다. 좋은 집안의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경제계에 입문해서, 정치계까지 입문하면서 성공했다. 그게 소위 말하는 성공이라면. 물론 동생들은 좋은 집안의 여자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버려졌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라왔다. 쇠놰를 받아오면서. 공부하면 성공한다. 공부 못하면 공장에 가야한다고. 그러나 대학을 나온 나는 대학에 나오지 않은 돈이 많은 아빠를 둔 내 친구보다 못하다. 분명히 그 아이는 공부를 못했지만 아빠의 돈으로 외국에 나갔고 지금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잘 살고 있다. 난 내 힘으로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돈을 벌고 있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고 월세집에 살고 있다. IMF에 날아가버린 엄마의 가게는 엄청난 빚으로 돌아왔고 원래도 부자는 아니었던 우리집은 엄청난 빚을 갚아야만 했다. 지금은 빚이 없는 지금에 엄청나게 안도하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이런 사회에서 공부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우열반을 하고, 0교시에 무조건 나가 공부를 하면 정말 세상이 달라질까? 학교가 학원처럼 공부만 시키면 정말 예전처럼, 울 언니 친구처럼 가난해도 성공할까? 난 잘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건 지금은 단지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무조건 아이들을 몰아친다고만 해서 그 아이의 신분이 바뀌고 그 아이의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거다. 학교란 게 공부를 위한 수단만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내가 생각할 때 지금 정부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런데 그 꿈이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지향적이다. 열심히 공부만 하면 육남매를 내가 모두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꿈. 공부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러나 그 믿음은 이미 내 나이의 세대에서 깨졌다. 돈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세상이다. 이런 부조리에 대한 칼질 없이 공부만 하면 달라지는 세상이 정말 올까? 성공하면 뭐든지 다 된다는 헛된 믿음.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50,60,70년대에서 찾는 어리석음. 이미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그들이 알 수 있는 방도는 없는 것일까? # by aspacia | 2008/05/28 16:44 | 트랙백
어쩌면 이럴 수도 있겠다. 남들이 다 굶고, 배고프고 하던 시절. 한 아이는 절대로 나는 배가 곯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정말 열심히 해서 성공을 했지. 그 아이는 다시는 가난하기 싫어서 온갖 불법들을 저질러 돈을 모았고 권력을 쥐었지. 그리고 그 아이는 대통령이 된 거야. 점차 커져가는 욕망이 자신을 먹는 걸 바라보며 그 아이는 만족을 느끼지. 그래서 어쩌면 죄책감이 없는 걸지도 몰라. 어린 시절 꿈 꿨던 대운하를 건설하겠노라는 목표를 그 아이는 다짐하곤 하지. 감자기 이명박을 보면서 20세기 소년을 생각했다면, 나 너무 뜬금없는 거니? 자꾸만 20세기 소년의 상처받은 친구의 비뚤어진 욕망과 몬스터 요한의 그 순수한 악이 떠올라. 2007년 11월 30일 전역한 윤영수 장군. 근무기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일기를 모아 책으로 발간했다. 육사를 졸업하고 임관 후 청와대 경호실 경호관, 미중부사 협조단장을 지낸 그를 만나보았다. ![]() “36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면서 후배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었습니다. 매일매일 써 온 일기를 기록으로 남기면 어떨까라고 생각해보았어요. 제 일기를 보고 후배들이 군대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행복한 군인이었다.’의 저자 윤영수 장군(56). 그는 2007년 11월 30일 전역 신고를 마친 그는 육사에 입학한 이후 매일 써온 일기를 발췌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수양록’이 되었다. 개인의 발자취는 물론이고 역사를 담은 그릇이 된 일기에는 격동기 한국의 모습과 군인으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책에는 젊은 육사 생도가 임관 후 가정을 이루고 군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이 책이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나 군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군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는 광주고 재학시절 학교에 찾아온 육사생도를 보고 군인의 길을 택했다. “일단 그 생도의 모습이 참 늠름해 보였어요. 또 국가의 일을 가장 일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군인일거란 생각에 서슴없이 육사를 선택했습니다.” 군인으로 살며 군인이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그. 1972년 육사에 입학한 그는 육사시절을 매우 소중한 기간으로 기억한다. 4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그 훈련 기간이 민간인을 군인으로 변모시켰다고. 4년 동안의 육사생도 생활은 인내와 절제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생도도 있었고 견디지 못하고 자퇴한 생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그는 참된 군인, 충성심과 국가관, 도덕심과 애정, 효심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육사에 입학하면 매일 일기를 써야 하는 것이 전통이다. 육사에서 지급하는 공책에 하루 일과를 기록하게 한다. 생도 시절 매일 일기를 써버릇하던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그는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는 게 하루 일과죠. 그러다보니 지금은 안 쓰면 허전해요. 훈련을 나갔을 때는 일기를 쓰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아플 땐 중간에 그만둘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도 계속 써온 보람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을 땐 아침에라도 쓰면서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는 나 자신의 기록도 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나쁜 점을 고치려고 애썼다.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뿌듯한 마음도 느꼈다. 일기를 통해 그는 영어 공부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장교 영어반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동안 영어로 일기를 썼고 그때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그에게 일기란 습관이자 좋은 친구인 셈이다. 1978년 그는 청와대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경호관으로 근무한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다. 고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였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경호관 근무를 마치고 대위로 진급 후 신앙을 갖기로 결심하게 된다. 몸이 너무 아파서다. “디스크가 심했어요. 군인이면 몸이 건강해야 하는데 허리가 아프니 많이 힘들었죠. 결국 수술까지 했습니다.” 그는 군 생활을 하며 가장 힘들었을 때로 아팠을 때를 꼽는다. 혹한기 훈련 때는 너무 아파서 죽을 만큼 힘들었다. 체력이 중요한 군인이 아픈 것에 대해서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을 신뢰해 준 상관들과 버팀목이 되어준 동료들 덕분에 그 고비를 넘겼다고 회상한다. 그는 힘든 시간들을 통해 타인에 대한 고마움을 알 수 있어서 군 생활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억에 남는 근무지로 파주를 꼽는다. 파주는 그가 대대장으로 근무했던 지역. “대대장으로 근무했던 문산 파주에서의 생활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한 부대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부대를 위해 엄격하지만 유머 감각이 있는 대대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은 것은 태권도 경연대회. 모든 대원이 참가했지만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습 기간 동안 대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하나로 뭉쳤으므로 아쉬울 것이 없다고. 그는 경연대회를 통해 꼭 이기지 못하는 사람, 앞서가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대령이 된 것은 1994년. 대령이 된 이후로 여러 보직을 지냈다. 사단참모장을 지내면서 야전지휘관 및 참모 업무의 조정․통제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합참 군사협력과장 기간 동안 한미동맹관계 및 유대강화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2001년 한․미연례군사 위원회 회의 차 방문한 미국에서는 9․11테러를 경험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이 있었다고. 다양한 일을 겪으며 그가 늘 생각한 것은 ‘리더십의 근본’이다. 부하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칭찬하여 동기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 혼내기보다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그가 생각한 리더십이다. “부하들을 저와 같은 수준으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장님께 혼이 난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제가 볼 땐 아무것도 아닌데 높은 사람이 보기엔 중요한 문제인 경우도 있구나. 내 위주가 아니라 부하들의 입장을 고려하자고 생각했죠. 영하 15도의 날씨에서 밖에서 자기도 하는 게 군인 아닙니까. 안쓰럽죠.” 장군으로 진급한 뒤 2007년 미 중부사 협조단장으로 플로리다에서 1년간 근무하였다. 그는 이 기간을 의미있는 기간으로 기억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고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며 테러의 고통을 실제 경험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죽음을 눈으로 보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이라크․아프간 대 테러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부시 대통령과 직접 만나 이라크 군의 양성완료 시기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진정한 지도자, 군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일기를 책으로 내기로 결심했다. “36년간의 자취를 더듬어보면서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조그만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평범한 군인이지만 제 생활을 통해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전역했다. 그의 책에는 진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에 좋은 사실만 담아두기보다는 군생활의 어려움이나 자신의 실수를 그대로 남기는 것이 후배 장교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군 생활에 대한 환상보다는 장교로서의 솔직한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후배들이 군생활의 힘든 모습도 볼 수 있겠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올바른 장교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올바른 장교는 어떤 모습일까. 그가 생각하는 장교의 가장 필수 조건은 ‘통솔력’이다. “물론 다른 것도 다 중요합니다. 체력도 있어야 하고 성실하기도 해야죠. 그건 기본 사항입니다. 그러나 장교는 자신의 부대를 잘 지도해야 합니다. 장교는 마치 한 집안의 부모와도 같습니다. 아이를 기르듯이 자신의 부하들을 지도해야죠.” 집에서 부모의 역할이 아이들의 본보기인 것처럼 장교의 역할 또한 그런 것이라고. 부모가 올바른 길을 가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길로 가기를 지도하듯이 장교도 자신이 올바를 때 부하들을 잘 인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올곧고, 심지가 있을 때 부하들을 하나로 모으고 자신의 방향대로 부하들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바로 ‘올바른 통솔력’이라고. 그런 자세를 갖춘 장교로 그는 맥아더 장군과 박정희 대통령을 꼽는다. 냉철한 판단력과 부하들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군인이 바로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군인상이다. 그가 생각하는 군대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그는 군대가 인생에서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서는 인생을 계획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실천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는 습관과 체력을 기를 수 있는 곳이지요. 일과가 끝나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충분한 자유시간이 있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 군대라는 곳에서 미리 준비를 한다면 거친 사회 생활도 두려울 게 없겠지요.” 그는 군대 생활을 하면서 책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한다. 책을 읽으면 자신만의 가치관을 세울 수 있다고.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기일혜 씨의 수필집을 권한다. 아내의 추천으로 읽게 된 수필집에서 인생의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역 후 그는 ‘윤영수 장군 비전 스쿨’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입시 위주의 사교육만 있을 뿐 진정한 전인 교육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초등학생과 청소년, 젊은 청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의 장을 그의 손으로 일구려 노력하는 중이다. “젊은이들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직 구체화된 건 없어요. 준비단계지요. 혼란스러운 이 시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고 싶습니다. 사교육처럼 주입식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습관을 가르치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요즘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에 익숙해서 체력이 약한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단순하고 순진한 교육이 제가 꿈꾸는 교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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